▲ 이 세상 떠나간 발칸의 도살자 밀로셰비치.

유고연방의 분열과 해체 과정에서 대량학살 혐의로 국제유고전범재판소(ICTY) 재판에 회부된 슬로보단 밀로셰비치(Milosevic, Slobodan, 1941-2006) 前 유고슬라비아 대통령이 지난 11일 네덜란드 헤이그 감옥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밀로셰비치는 심장병과 고혈압에 시달려온 것으로 전해진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에서 히틀러가 유대인의 인종청소로 악명을 떨친 이래, 작심하고 마치 그 후계자임을 자임한 듯 밀로셰비치는 발칸반도에서 인종 말살책을  대대적으로 자행함으로써 신흥 도살자라는 치욕스런 닉네임을 부여받았다. 스스로 사지로 향한 밀로셰비치 죽임이 남긴 생생한  교훈들을 반추하기로 한다.<편집자주>

 
▽ 대량 살상의 악역 ‘밀로셰비치’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前 유고슬라비아 대통령의 유해가 15일 밤 조국 세르비아의 수도 베오그라드에 도착했다. 지난 2002년 체포돼 조국에서 추방된 지 4년여만.
 
밀로셰비치 유해는 16일 오후 6시(한국시간)부터 베오그라드의 세르비아-몬테네그로 연방의회 앞에서 일반에 공개 이후 18일 베오그라드에서 남동쪽으로 50㎞ 떨어진 고향 마을 포차레바치의 가족 묘역에 안장되었다.

망자를 놓고 재판을 속개할 방안은 아직까지 아예 찾지 못했나 보다. 국제유고전범재판소(ICTY) 패트릭 로빈슨 판사는 전범 재판의 공식 종료를 선언했다.
 
1990년대 발칸전쟁에서 전쟁범죄, 학살죄, 반인도적범죄 등 66건의 전쟁범죄 혐의의 주역인 밀로셰비치는 2000년 대선 후 민중봉기로 코슈투니차에게 대통령 자리를 물려주었다. 이후 국제유고전범재판소(ICTY)에 의해 2002년 2월 12일 재판대에 첫 등장한 이후 4년여만의 일이다.

올해 64세인 밀로셰비치는 1990년대 유고 대통령이 된 후 코소보전쟁(1998-1999년), 크로아티아전쟁(1991-1995년), 보스니아 전쟁(1992-1995년) 등 발칸반도에서 벌어진 60여건의 전쟁 및 반인륜 범죄 혐의와 1995년 보스니아에서 7000명의 이슬람교도들을 학살한 혐의로 기소돼 국제유고전범재판소에서 재판을 받아 왔다.

밀로셰비치는 세르비아 포자레바크(Pozarevac)에서 출생했다. 부친은 1962년에, 모친마저1973년에 자살을 한 비극적 가정환경에서 성장하였다.
 
가난하지만 명석했던 그는 공산당 지도자의 딸 미라 마르코비치를 아내로 맞아 후견인이 되면서 새로운 인생을 활짝 열어나간다. 1964년 베오그라드 대학교 법과대학 졸업 후 변호사가 된 그는 잠시 금융계에서 일했지만 공산당에 투신하여 공산당 산하기관인 경제연구소에서 여러 직책을 맡아왔다.

▲ 민족주의를 부추긴 밀로셰비치의 등장은 발칸을 세기의 화약고로 급부상시켰다.

1984년 절친한 친구 이반 스탐볼리치(Ivan Stambolic)가 세르비아 공산당의 신임지도자가 되자, 공산당 베오그라드 지구당의 위원장을 맡았다. 그리고 1987년 9월 스탐볼리치의 뒤를 이어 세르비아 공산당 당수가 되었다.

1989년 5월에는 세르비아 대통령으로 극적 선출되었으며, 大세르비아주의를 제창하여 세르비아 민족주의를 거세게 촉발시켰다. 이는 결과적으로 크로아티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등에 거주하는 세르비아계 주민들에게 공연한 민족주의를 부추겨 세르비아에 의한 유고연방 통치에 대한 야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이는 다양한 민족이 혼재하는 유고에 피할 수 없는 대량 살상의 대비극을 불러일으키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었다.
 
 
▽ 냉전해체의 기쁨은  ‘남의 일’ 
 

▲ 다민족으로 구성된 구유고 연방은  밀로셰비치의 민족주의 야심에 일대 살육장으로 돌변하였다.

제1-2차 세계대전 전후처리의 부산물인  유고슬라비아는 보스니아를 위시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몬테네그로, 마케도니아, 슬로바니아로 구성된 다민족 1국가 체제를 가까스로 지탱하고 있었다. 각각의 지역에는 다른 민족들이 섞여 사는 경우가 많았고 종교는 그리스정교, 이슬람 등 다양했다.

1989년 8월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유고 공산당수가 대선 2차 결선투표에서 승리했을 때 국제사회는 발칸반도의 안정에 큰 기대를 걸었다.

그러나 극히 유감스럽게도 밀로셰비치는 89년 세르비아의 최고 권력자에 올라 ‘대세르비아주의'를 제창하면서 민족주의를 맹렬하게 촉발시켰다. 이로써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등에 거주하는 세르비아계 주민에게 민족주의를 고취시키고 ‘세르비아에 의한 유고연방’ 통치에 대한 야욕을 불태우게 했다.

취임 3개월 후 베를린장벽붕괴로 공산주의 몰락과 냉전해체로 유고연방 해체라는 최악의 상항을 맞았다. 그는 공산진영 최초로 직선에서 뽑힌 대통령으로 유고연방의 붕괴를 막아야 했다. 결국 1991년 6월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가 독립을 선언하면서 '발칸의 시한폭탄'은 이렇게 터졌다. 유고연방군을 동원해 유고해체를 막으려 한 것이다.

1991년 초 구미 강대국들은 유고의 해체를 거부하고 밀로셰비치의 입장에 동조했다. 베이커 미국무장관이 유고연방 해체를 반대한다고 연설해 힘을 실어주었다. 불행의 단초를 예시하는 서곡이었을까. 통독을 일군 독일이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를 승인함으로써 유고연방 존속이 이내 물 건너가 버렸다.

91년 6월 25일 유고 연방에 속해 있으면서도 공화국으로서 자치권을 지녔던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가 유고 연방으로부터 독립을 선포하면서 내전의 불씨는 터졌다. 연방군은 즉각 슬로베니아 국경 거점을 장악하고 무력진압에 나섰다. 그러나 연방군과 연방정부간 불협화음으로 인해 곧 휴전에 들어가고, 유럽연합(EU)의 평화 중재안에 합의해 독립이 실현됐다.

슬로베니아와 연방간 전쟁의 불똥은 곧 크로아티아로 넘어갔다. 91년 7월 들어 크로아티아와 세르비아 공화국간 산발적인 전투가 벌어지더니 곧바로 내전 상황으로까지 번졌다. 10월 들어 연방군은 크로아티아의 수도 자그레브를 공습해 대통령궁을 폭격했다.

▲ 세르비아의 대살육전은 히틀러의 유대인 대학살 이후 씻지 못할 오명을 남겼다.

대량 살육 일보직전까지 갔던 전쟁은 그러나 유럽연합이 세르비아에 대해 경제제재의 압력을 넣는 등 적극적인 중재활동을 펴 10여 차례의 휴전 끝에 92년 1월 완전 독립을 이뤄냈다.

약술한바, 밀로세비치의 민족주의 정책은 다양한 민족이 혼재하는 유고에 피의 역사를 가져다주었다. 세르비아와 슬로베니아 및 크로아티아간 내전은 단기간 내 종식되었지만 장기간 유혈을 부른 것  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와 코소보 사태이다. 


▽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살육전 

 25만명의 희생자를 내고 230만 명의 난민을 발생시킨 보스니아 내전은 발칸반도의 복잡한 민족구성과 역사가 원인이 되어 탈냉전 이후 보스니아 회교정부 및 크로아티아와 신유고연방의 지원을 받는 보스니아내 세르비아계 사이에서 발발한 분쟁이다.

1992년 3월 3일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는 국민투표를 통해 독립을 선포하였다. 그러나 독립의 선포는 곧 분쟁의 시작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보스니아내전은 세르비아민족끼리 이슬람과 세르비아정교간의 종교전쟁의 성격이 뚜렷했다. 오스만터키 지배로 도시민이 이슬람에 동화됐으나 농민은 세르비아정교를 믿었다.

보스니아내 약 30%를 차지하는 세르비아인들은 보스니아에서 분리 독립을 주장하며 유고연방에서 독립의 가부를 묻는 선거에 불참하면서 보스니아 독립선언 다음날인 3월 4일 독립을 선언하였다. 이어 1992년 4월 6일 유럽연합(EU)이 보스니아의 독립을 승인하자마자 보스니아는 내전에 본격 돌입하였다.

유고연방군의 지원을 받는 세르비아계는 내전 초기 보스니아 영토의 약 70%를 일거에 장악하는 기세를 올렸다. 보스니아 사태가 위험 수위를 넘자 UN은 동년 5월 신유고연방에 대한 전면적인 금수조치, 항공봉쇄, 자산동결을 주 내용으로 하는 제재 조치를 취하였다.

▲  보스니아 내전에서는 25만명의 희생자뿐 아니라 무려 230만명의 난민을 발생시켰다.

신유고연방군은 곧 휴전에 합의하였지만 보스니아내 세르비아계는 휴전에 동의하지 않은 채 자체적으로 전쟁을 속개했다. 민족간 유혈 사태에 군사개입을 적극 자제하던 UN은 소위 '인종청소'라 불리는 만행이 속속 드러나자 1992년 8월 군사개입에 착수한다.

3만여명의 평화유지군이 보스니아에 파견되었고, 미국의 주도하에 보스니아,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등 내전 당사국들과 미국, EU, 러시아 등 중재자들이 참여한 가운데 1995년 12월 미국 오하이오주의 데이턴에서 평화협정이 체결되고 보스니아에 평화가 정착되는 시금석을 마련하였다.
 
 
▽ 알바니아계 인종청소 ‘코소보사태’

코소보는 1974년부터 유고연방의 하나의 자치주로 유지되어 왔었는데 1989년 들어 세르비아공화국의 대통령 밀로셰비치가 자치권을 박탈하고 알바니아어의 사용도 금지하는 등 탄압조치를 취하자 이에 반발하여 알바니아계 주민들이 총파업을 계속하고 자치권을 주장할 뿐만 아니라 강경주의자들은 코소보의 독립을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 국제유고전범재판소는  무려 4년여 이상에 걸쳐 밀로셰비치 재판을 이끌어 왔으나 사망함으로써 최종적 진실 규명에 이르지 못했다.

코소보의 인종분포를 보면 총 인구 약 235만 중에 알바니아인이 180만(77%)으로서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세르비아인이 약 30만(13%)에 불과하여 대부분 요직을 다수의 알바니아인들이 맡고 있었다.

인구 57만명의 몬테네그로인들이 공화국을 구성하고 있는데 반해 180만명의 알바니아인들이 자치주로 만족하지 않고 독립을 갈망한 것은 너무 당연한 처사였다. 후에 다시 몬테네그로는 자발적으로 세르비아와 통합을 이루어 신유고 연방을 결성하였다.

세르비아인들은 알바니아계 주민들에 대하여 무자비한 무력진압을 시작하자, 이에 반발한 알바니아계 주민들과 세르비아정부군간에 치열한 내전으로 진전되고 무자비한 학살이 자행되게 되었다. 보스니아내전의 종식으로 한 동안 잠잠하던 발칸반도가 다시 전화(戰火)에 휩싸이게 된 것이다.

발단은 1998년 3월 초 코소보의 알바니아 분리주의 반군들이 세르비아 경찰을 공격하면서 코소보사태가 촉발되었다. 세르비아 경찰은 즉각 반격에 나서 반군뿐 아니라 반군 거점지역의 주민들을 대량 학살하였다. 이에 맞서 알바니아계 주민들은 코소보해방군(UCK)을 중심으로 게릴라전을 전개하였다.

1998년 3월 31일 국제연합(UN)은 유고연방에 대한 무기금수조치를 내렸으며, 1998년 4월 세르비아의 탄압에 대한 알바니아계 주민의 시위가 확산되었다. 세르비아는 1998년 5월 3일 대규모 소탕작전을 전개하면서 알바니아계 주민들을 대상으로 이른바 인종청소작전을 펼쳤다.

이를 피해 코소보로부터 탈출하는 알바니아계 주민들이 러시를 이루었고, 난민 수는 당시 무려 30만 명에 이르렀다. 1998년 6월 코소보사태에 대한 개입을 선언한 미국과 유럽연합은 나토(NATO) 병력을 코소보 주변에 배치하고 코소보로부터의 세르비아 병력의 철수, 잔혹한 인종청소의 중단을 촉구하였다.

▲ 밀로셰비치의 천인공노 악행은  현대사에 있어 커다란 재앙이다.

그러나 이에는 아랑곳 하지 않고 세르비아군은 1998년 8월 코소보해방군의 주요거점을 함락시켰다. 이에 나토는 세르비아에 대한 무력 사용을 결정하였다. 1999년 3월 24일 나토는 유고연방에 대한 공습을 시작하였다.
 
마침내 6월 3일 세르비아 의회가 유엔(UN)의 평화계획을 승인하였다. 6월 5일부터 나토와 유고연방간에 군사회담이 열렸고, 9일에는 군사협정이 체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