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1월 18일 올해 국정운영 방향의 구상과 계획을 밝힌 신년특별 연설에서 메인 화두는 우리 한국 사회를 전반에 두루 확산되고 있는 ‘양극화’ 해소에 초점 맞추어졌습니다.
 
물론 양극화 심화가 한국만의 특수 상황은 아니라고는 하나, 정보화 사회에 접어들면서 더욱 심화되고 있는 추세를 감안할 때, 이에 대한 총괄적 모색과 광범위한 타개책이 적극 개진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에 브레이크뉴스와 사건의 내막에서는 본보 칼럼니스트를 위시 외부 필진까지 총망라하여 우리 사회의 각 분야에서 양극화의 현실성을 심층 투시할 지면을 긴급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참여정부의 지방분권책은 많은 기대를 불러일으켰건만 실제 지방의 열악성과 낙후성은 괄목할 호전 현상을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입니다. 따라서 이런 흐름들을 엄격 정밀 조망하면서 양극화의 현실과 진단뿐 아니라 대안까지 제시할 사이버 포럼에 독자 제현들의 많은 관심과 성원을 기대합니다.<편집자주> 

 
▽ 지식으로 결코 행복할 수 없다 

 

▲최형선 칼럼니스트

역사를 통해 알게 되듯 인류가 수렵생활에서 농경생활로 전환하는데 수천 년이 걸렸다고 한다.
 
하지만 농경사회가 산업사회로 전환하는데 걸린 시간은 1세기에 지나지 않는다. 이젠 정보사회이다. 산업사회가 정보사회로 전환되기까지는 더 짧은 시간이 걸렸다. 단지 30년이 걸렸으니까 말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지식의 홍수 시대를 살고 있다. 그렇다면 지식이 인류에게 혜택만을 가져다준 것일까? 난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버지 세대보다 우리는 분명 많은 것들을 누리고 살고 있으며 풍요롭기까지 하다. 그러면 과연 물질과 지식의 풍요가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었는가? 그것을 여기서 논해보고자 한다.

지식의 양과 인간이 느끼는 행복의 지수는 일치하지 않는 것 같다. 지식을 습득함으로 좋은 직업도 갖게 되고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하지만 그것을 통해서도 인간이 추구하고자 하는 행복과 정신적 성장은 성취되지 않았던 게 확실하다.

여전히 인간은 고뇌 속에서 살아간다. 그리고 정신적인 아노미를 겪으며 자신을 해체하는 사람들을 얼마든지 볼 수 있다.

인간은 문명의 이기를 통해 편하고 아늑한 삶을 영위하기를 원했고 마침내 그런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육체적 노동에서 해방되는 그 자체가 인간의 저변에 깔려있는 욕구를 온전히 충족시켜 주지는 못했다. 인간은 편해졌지만 여전히 갈등 속에 있고 인간은 많은 지식을 얻었어도 우울하다.

논제의 중핵은 이러하다. 지식의 폭증이 행복의 충족과 정비례 관계를 절대적으로 형성해오지 못했음이 역사적 실례에서 거듭 확인되고 있는 만큼, 지식과 정신세계 역시 극심한 불균형 하에 양극화 심화의 절대적 주범이라는 사실이다. 

 
▽ ‘지식의 천국’ 공허감에 몸서리

미국의 중산층 이상의 사람들을 대하노라면 그들이 얼마나 많은 정보를 영위하고 있는 지를 실감하게 된다. 미국은 많은 전문가 집단들을 보유하고 있다. 그들은 방대한 정보를 보유하고 있으며 각 분야별로 깊고 풍부한 이해를 통해 새로운 정보를 가공하고 양산해 낸다.

▲인간은 여전히 고뇌 속에서 살아간다. 정신적 아노미를 겪으며 자신을 해체하는 사람들을 얼마든 볼 수 있다.

난 미국인들과 만나는 가운데 그들이 얼마나 폭넓고 깊게 사고하고 있는지를 발견하게 되었다.
 
한국인들이 간과하기 쉬운 사소하지만 절차에 관련된 문제들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함을 보고 신기할 따름이었다.
 
그리고 그런 식의 사고가 미국의 식자층들을 부양하는 힘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에 반해 미국의 빈곤층을 형성하고 있는 불법이민자들이나 흑인들의 경우는 상반된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아직도 글을 모르는 문맹 인구가 많고 한 조사에서는 태양이 지구를 돌고 있다고 믿는 이들도 많다고 하니 미국 정부로서도 통탄할 노릇이다.

세계에서 지식에 대한 양극화 문제를 가장 크게 통감하고 있는 사회가 바로 미국 사회인 셈이다. 이러한 지식의 양극화가 가져다 준 부작용은 범죄의 급증과 사회보장비용의 상승으로 이어진다.

평생 열심히 일해도 잘 살 확률이 없다고 생각하니 도덕적 교육이나 공평한 고용의 기회를 부여받지 못한 그들이 취할 수 있는 방법의 하나는 범죄를 통해 부를 거두고자 하는 심리일 것이다.

▲지식과 정신세계 극심한 불균형이 사회병리 지뢰밭으로 작용하고 있다.

미국은 민주주의 국가이기도 하지만 강력한 통제사회란 이면을 가지고 있다. 엘리트층이나 중산층의 이익을 보존하고 치안을 담당할 요량으로 강력한 통제사회를 구축하려는 시도가 현재에도 여전히 시도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부의 역할도 통제권 안에 들어 있는 많은 이들에게 기회를 보장하고 그렇지 못한 이들에 대해서는 강력한 단속과 통제를 가하는 자세를 견지하고 있는 것이다.

지식의 습득은 많은 이들에게 기회를 주지만 反사회주의자들에게 주어졌을 때 사회유지에 위협을 가할 수 있는 수단이 되므로 미국 정부도 지식의 양극화를 조장하는 면이 없지 않아 있다고 본다.

중요한 것은 미국에서는 모르면 죄가 된다는 사실이다. 미국이란 땅은 기회의 땅이었다. 그 기회를 많은 사람들이 균등하게 누리기 위해서는 법률이란 게 필요했다. 이에 판례를 포함한 법률의 테두리는 촘촘한 법조항의 네트워크를 형성하게 된다.

그래서 미국의 법처럼 분화되고 세세한 경우의 수를 포함한 예도 드물 수밖에 없다. 상품을 출시할 때도 문제의 소지를 사전에 차단하는 문구를 달지 않으면 나중에 소송이 되어 돌아온다.

따라서 전문가들이 필요하고 그러한 전문가들을 보유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비용을 감수해야만 한다. 하지만 기회의 땅에서 돈이 없으면 그런 기회까지 보장받기는 어려울 것이다.

미국에서도 자본주의의 병폐인 빈익빈부익부를 막을 방법이 없다. 법률의 거시적 미시적 지배원리에 통달한 부자들은 온갖 재테크를 통해 그들이 가진 부를 더욱 배가시킬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이제 미국은 부자들에게만 기회의 땅이 되어가는 듯하다.

하지만 지식을 많이 가지고 있는 부자나 중산층이라고 별날 것은 없다. 범죄가 난무하는 미국에서 자신의 부를 지키기 위해서는 많은 손실도 감수해야만 한다. 자신의 부나 직업을 지키기 위해 막대한 스트레스에 시달려야 하고 자신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변신해야만 하므로 그들도 시달리기는 마찬가지인 셈이다.

지식을 많이 가졌건 그렇지 않건, 부유하건 가난하건 미국은 지금 모두가 고민하고 있다. 무엇이 문제인가?

단적으로 미국사회를 예로 들었지만 위에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이 있다면 아무리 지식적으로 충만하다 할지라도 인간은 공허함을 떨칠 수 없다는 것이다.

 
▽ 만신창이 哲學 ‘시한부인생’

철학과 심리학은 서구정신문명의 원천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서구정신문명도 공허를 느끼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아무리 철학을 발전시키고 전개한다 하더라도 이제껏 결론을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윈 진화론이 인류 정신문명사에 지대한 해악을 끼치지는 않았는지 역사적 통찰이 절박한 시점에 도달했다.

철학과 심리학은 논리라는 틀을 바탕으로 서구의 기술문명을 더불어 포용하고 있고 문명사회에서의 인간의 역할을 제시한다. 하지만 인간이 기술에 종속되는 형태로부터 돌파구를 제시하지는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철학은 많은 사조를 낳았고 사조마다 각기 다른 전제와 가설을 바탕으로 인간을 분석한다. 하지만 결국 인간의 생각을 붕괴시키는 장본인이 되었다. 철학을 통해서는 어떤 결론도 유추해낼 수 없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합리주의에서는 너무 이성만을 강조함으로써 인간의 본질에서 멀어졌고 낭만주의의 경우에는 분석보다 감성과 영감에만 지나치게 매달림으로써 현실과 동떨어져갔다. 

그렇다고 자연주의나 사실주의가 제대로 답을 제시하였는가? 그렇지 않다고 본다. 고정된 견지와 편견에서 해석하였을 뿐이다.

어느 사조라도 합당한 주장과 변을 가지고 있으므로 인간의 논리라는 틀이 결국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처럼 기준을 제시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게 된 것이다.

심리학의 경우도 결국 기계적인 인간의 행동과 사고를 도출해냄으로 인해 인간을 동물과 매한가지로 둔갑시킨 감이 있다. 인간의 유일성이나 존엄성은 심리학이란 분야에서는 다루어지지 않으며 생물학의 한 분파처럼 변해가고 있다.

결국 인간의 독창적이고 복잡하기까지 한 행동양식이 철학과 심리학의 테두리에서 분석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인간에게 방향성을 제시하지는 못하고 있다.

 
▽ ‘21세기는 제2의 영성 혁명기’

존 나이스비트와 같은 미래학자들은 21세기에 제2의 영성(靈性)혁명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견하였다. 이는 기계문명으로 인해 침해받은 인간의 존엄성을 회복시키려는 노력이 가시화될 것이라는 분석에 따른 것이다.

▲복잡다단한 신비의 영역인 인간의 마음을 거둘 수 있는 안식처가 더욱 절실해졌다. 단적으로 표현하면 인간은 결코 철학이나 심리학과 같은 학문에서 위로를 받지 못하고 있다.

이제껏 인간은 발전하는 기술과 문명에 지배를 당하면서도 그것을 현상으로 이해하였을 뿐 반격을 하지 못했었다. 21세기에는 인간이 존엄성 회복을 위해 운동을 개시하게 될 것이라는 말이기도 하다. 그리고 실제로 되풀이되는 일상에서 탈출하여 상실의 아픔을 종교에서 치유 받으려는 인간의 노력들이 점차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서양의 철학은 동양의 철학이나 종교와 교류하기 시작하였고 “뉴에이지운동”을 통해 음악계, 미술계, 문학계를 포함한 여러 영역에서 산출물들을 거두고 있다. 결국 철학이나 어떤 학문이라도 인간에게 비전과 방향을 제시하지 못하는 상태에선 21세기에 명맥을 유지하기 힘들어 보인다.

인간에겐 자신의 마음을 거둘 수 있는 안식처가 필요한 셈이다. 단적으로 표현하면 인간은 결코 철학이나 심리학과 같은 학문에서 위로를 받지 못한다. 그동안 소외받았던 인간은 위로받을 수 있는 형이상학을 추구할 필요를 절감하게 되었다. 그것의 원천이 종교일 수도 있고 아니면 심신을 수련하는 형태가 될 수도 있다.

어떤 형태의 종교나 수련의 목적도 각자의 마음을 제어할 수 있는 툴과 같은 것이어서 신비주의와 같은 형태를 취할 수도 있고 스트레스를 제어하기 위한 수단으로 여겨질 수도 있을 것이다. 최근 요가나 명상 열풍이 동서양을 휩쓸고 있는 것은 이런 추세를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정체성을 통해 자신의 위치를 발견하게 된다. 부유층이나 빈곤층이나 고용주나 피고용주나 할 것 없이 모든 사람은 자신의 위치를 찾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그것을 담은 지식을 신지식이라고 부르건 부르지 않던 간에 21세기에는 그것으로 장사하는 이들도 생겨날 것이다.

중요한 것은 방황 속에서 적을 두지 못하던 인간들이 어떻게 도피처를 찾아낼 것인가에 있다. 방황의 시작은 지식에서 비롯되었으므로 과연 새로운 지식이 그들의 마음을 채울 수 있을 것인가? 이것 역시 한계가 노정될 것이 분명하다면 어떤 반전의 흐름이 태동될 것인지 긴박감과 조바심이 나지 않을 수 없다.

새로운 운동을 “新휴머니즘”이라고 부르건 “제2의 영성혁명”이라고 부르건 난 알바 아니다. 내가 말하려는 것은 인간이 만든 어떤 지식도 인간이 찾고자 하는 정신적 욕구를 해소해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외계인이란 신비한 존재를 통해 모든 종교를 아우르려는 이들도 있고 동서양의 종교나 철학을 한데 집대성하려는 집단도 나타나고 있다. 이것은 바로 신적인 존재의 계시를 통해서만이 모든 것이 해석될 수 있고 인간도 정체성을 갖게 될 것이라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어쩜 나만의 생각일지 모르겠으나 인간은 어쨌든 21세기에 와서 드디어 결론을 도출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인간의 한계점을 발견하고 있고 인간이 양산한 지식의 끝을 보고 있는 듯해서 말이다. 물리학도 인간의 한계에 의해 정체될 것이 뻔하고 수학도 이젠 숫자개념에 안주하지 않고 다차원에 접근하려는 노력을 경주한다.

인간의 여정은 어쩜 신을 발견하기 위한 험로를 개척해온 것은 아닐까? E=mc2라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은 커다란 에너지가 존재하지 않고는 질량을 가진 만물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치를 반증하고 있다.

▲어떻게 엄청난 우연에 의해 오묘한 질서와 신비의 만물이 저절로 생겼다는 가설을 믿어야 하는가. 이제 창조의 영역을 편견없이 진지하게 탐색할 때이다.

사실 아인슈타인처럼 대단한 발견을 한 과학자도 드물 것이다. 인간의 학문 중에서 아인슈타인처럼 사물의 원천을 발견케 하는 실마리를 제공한 예가 또 있을까?

기실, 인간의 존재에 대한 해석도 진화론이나 저절로 생겼다는 우연적 가설로는 결코 풀리지 않는다. 어떻게 엄청난 우연에 의해 오묘한 질서와 신비의 만물이 저절로 생겼다는 가설을 믿어야 하는가? 이는 결론을 이끌기 위한 억지처럼 보여진다.

그리고 이젠 많은 사람들이 맹목적으로 진화론이나 천체물리학의 가설을 믿지 않을 만큼 보다 현명해졌다고 생각한다. 우주의 출발이 어디에서 비롯되었건 물질의 존재는 에너지가 없이는 해석이 되지 않는다. 결국 인간은 우연 아닌 필연적 요체의 개입 없이는 해석되기 힘든 존재인 셈이다. 그리고 인간은 창조주와 대면하도록 프로그램 된 존재일지도 모른다.

지식의 양극화는 결국 인간의 고뇌에 대한 극성을 표출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너무 많이 알아서 괴롭고 너무 조금 알아서 답답한 정도가 아니라 인간은 무언가를 찾기 위해 어떤 여건에서건 고뇌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지식의 많고 적음에 상관이 없이 인간은 자신의 존재와 위치를 찾기 위해 갈급해 하는 것이다. 21세기의 정신혁명은 결국 형이상학의 최정점인 신적인 영역과 조우하면서 결론이 날 확률이 크다 하겠다.

 
◇ 최형선 프로필

- 現 ‘Tesco’ technical writer
- Brooks Automation Software special writer
- 臺灣, 日本, 싱가폴서 시스템통합(SI) 프로젝트
- 하이닉스(Hynix)  반도체 자동화 프로젝트 수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