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새 명절이다. 방송에서는 고향을 찾는 수 만 명의 귀성객으로 도로가 넘친다면서 거의 멈춰 서버린 고속도로 위의 차량 행렬을 보여 준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해마다 명절이면 고향을 찾아 부모님을 뵙는 정성은 정말 아름다운 마음이다. 하지만 설레는 마음으로 찾은 고향에 늙으신 부모님을 뒤에 두고 떠나 올 때면 항상 마음은 다시 무거워지는 것이 어디 한 두 사람의 일은 아닐 것이다.

어린 자식을 번쩍 안아 주시고 때로는 쩌렁쩌렁한 호통으로 무서움을 주시던 아버님. 그리고 머리가 펄펄 끓던 자식의 이마를 짚어 주시던 고운 손길의 어머님은 이제 더 이상 고향에 계시진 않는다. 대신 늙고 주름진 몸을 움직이기에도 힘들어하시는 부모님만 계실 뿐이다.

대부분 연로하신 부모님을 둔 자식들의 한결 같은 소망은 오래 건강하게 사시라는 것일 것이다. 사실 연로하신 노인 분들도 건강하게 살다가 어느 날 자는 듯이 세상을 하직하고 싶다고 말한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암이나 뇌혈관장애나 치매 등 자신의 인격이 황폐해 져가는 질환을 앓다가 사망하게 된다.

이런 질환은 당사자뿐만 아니라 이들을 돌보는 보호자들에게도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을 주기도 한다. 특히 불치의 병을 앓고 있는 경우에 환자 당사자나 가족들이 겪는 정신적 육체적 그리고 경제적 고통은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매우 크고 심각하다.
 
그런 의미에서 얼마 전 신문에서 반식물인간 상태로 불치의 병에 시달리던 딸을 간호해오던 아버지가 생활고를 이기지 못해 인공호흡기를 떼내 딸을 숨지게 한 사건에 대한 보도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어쩌면 불치의 병을 앓고 있는 많은 수의 환자들은 완치와는 거리가 먼 치료를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한 그 치료과정은 때로는 매우 고통스럽기까지 하다.

물론 심한 통증을 경감시키기 위하여 시행하는 강력한 진통제나 아예 신경을 차단시켜 버리는 방법 등은 도움이 될 수 있긴 하겠지만 사실 완치될 가망성이 전혀 없는 환자들에게 무수한 주사 바늘과 강력한 약물과 고통스러운 처치가 과연 전적으로 환자를 위한 것인가에 대하여는 누구에게나 쉽게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다.
 
또한 그런 방법으로 환자의 생명만 연장하는 것이 환자나 가족 그리고 의사 모두에게 커다란 도움이 될 것인가는 아무도 선뜻 대답하기 힘들다.

2005년 8월 통계청 조사에 의하면 매년 사망 인구의 절반 가량이 병원에서 임종을 맞는다고 한다.
 
그리고 상당수의 환자는 고결하고 경건한 임종을 맞는 대신 ‘의료기기에 둘러싸여 고통에 가득 찬 시간만 보내고, 인공호흡기 등 각종 의료기기에 둘러싸여 중환자실에서 초췌하고 기괴한 모습으로 죽어’가는 실정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환자가 덜 고통을 받으면서 후회 없이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고 가족들도 환자의 임종에 충분히 대비하고 서로 상의하고 그러면서 생명의 존엄함을 깨달으면서 품위 있고 편안하고 인간다운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방향에서 의료가 행하여지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 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오래전 적지 않은 나이지만 그래도 평균 수명이 70세를 훌쩍 넘긴 요즘으로 보면 아직은 여생이 한참이나 남아있는 한 환자가 위암으로 진단받고 오랫동안 투병하다 병원에 입원하였다.
 
이미 암은 전이될 대로 전이 되어 더 이상 가망이 없어서 두 어 달을 넘기기 어렵다고 진단된 환자였다. 뼈만 앙상하게 남은 상태로 병실에 가만히 누워있기만 하는 환자에게 때때로 치밀어 오르는 통증 보다 더 견디기 어려운 것은 조금만 먹어도 속이 뒤집히며 토하는 증상과 한숨도 잠들기가 어려운  것이었다.

고통을 다소나마 줄여주기 위하여 한 웅큼씩 먹어야 하는 약은 최소한만 남기고 복용을 중지 시켰다. 그리고 몸에 기운을 돋울 수 있는 한약을 복용토록 하고 대신 뜸을 통증 부위에 뜨도록 하였다.
 
그리고 몇 주 후 환자는 누워만 있던 침상에서 일어나 앉아 있기도 했고 그리고 몇 주 후에는 병원! 여기저기 산책을 하기도 했다. 주치의와 한참이나 병에 대하여 살아 온 인생에 대하여 길게 이야기하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표정이 밝아졌고 회진 때는 웃음으로 의사를 맞았다. 그런 상태로 몇 달이 흘러갔다. 그러다 어느 날 환자는 다시 증상이 악화되었고 이번에는 다른 병원 대신 자신의 집으로 퇴원하였다. 그리고 며칠 후 환자의 사망 소식을 접하였다.

물론 현대의학적 관점에서 이런 치료가 최선이었는가는 논란이 있을 것이다. 어쩌면 다른 방법이 더 효과적이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환자나 가족에게 모두 덜 고생스러운 방법이었다면 나름대로 충분한 가치가 있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결국 연로하신 부모님을 보면서 건강을 잃지 않도록 미리 검진하고 보살펴 드려야 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한편으로 건강은 세속적인 욕심을 버리고 편안한 마음으로 자연의 이치대로 살아야 한다는 고전의 말씀을 되새기게 된다. 아울러 존엄한 삶을 끝까지 유지할 수 있도록 의료적 사회적 노력과 뒷받침이 필요할 때라는 생각이다.
 
 
◇ 송봉근 교수 프로필

現 원광대학교 한의과대학 교수(한의학 박사)
現 원광대학교 광주한방병원 6내과 과장
원광대학교 한의과·동 대학원 卒
中國 중의연구원 광안문 병원 객원연구원
美國 테네시주립의과대학 교환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