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오는 11월 2일은 그동안 말썽 많았던 중ㆍ저준위 방사성폐기물처분장(방폐장) 유치신청을 낸 경주, 포항, 영덕, 군산 등에서 주민투표가 실시되는 날이다. 가장 찬성율이 높은 지역이 방폐장 설치장소로 결정된다.

방폐장 설치를 놓고 17년 동안이나 우왕좌왕했던 과거의 전철을 단절하고 드디어 방폐장 건설이 순조롭게 진행 될 것인지 그 귀추가 주목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가뜩이나 해놓은 것이 없다는 비판을 듣고 있는 노무현 정부로서는 방폐장 설치 지역 선정은 하나의 괄목할 만한 실적이 될 것이다.

그러나 방폐장 설치는 숱한 문제들을 안고 있다.
지난날 전북 부안에서 보았던 것처럼 방폐장 유치를 놓고 벌어지는 찬반 논쟁은 지역공동체를 상극으로 분열시킨다. 평화스럽던 마을이 찬반 양 진영으로 나뉘어 철천지원수처럼 서로를 미워하며 대결함으로써 지역을 갈기갈기 찢어 놓는다.

이러한 현상은 방폐장 유치를 신청한 4지역 모두에서 똑 같이 볼 수 있는 광경이다. 방페장 유치를 찬성하는 측은 정부에서 주는 3000억원의 지원금과 양성자 가속기 설치 및 한수원이전 등을 들면서 지역개발론을 주장한다. 단체장과 지방의회 의장이 앞장서고 관변 단체들이 함께하고 있다.

유치를 반대하는 측은 농민회와 환경단체를 포함한 시민단체들이 중심이 되고 있는데 이들은 핵폐기물의 위험성을 알리면서 방폐장으로 인한 다른 가치들의 상실을 주장하고 있다.   방폐장이 들어서면, 지역 이미지 실추, 각종 브랜드 가치하락, 농·수축산물 구매력 약화, 지가 하락, 혐오시설물 기피현상에 따른 인구감소 등이 예상된다고 지적한다.

방폐장 문제는 지역내의 갈등뿐만 아니라 인근 지역과의 마찰도 일으키고 있다. 군산의 경우 인근 충남 서천군이 군산 유치를 반대하고 있으며 경주의 경우는 인근 울산시가 반대하고 있다. 심지어는 지역감정을 부추기며 찬성율 높이기에 열을 내고 있다.

경주의 경우 태권도 공원을 전북 무주에 빼앗겼다고 주장하면서 이번 방페장까지 그럴 수 없다는 것이다. 군산은 군산대로 경북은 똘똘 뭉쳐 찬성율을 높이고 있는데 만약 방폐장이 경북으로 가게되면 전북인들이 얼마나 우습게 보이겠느냐고 은근히 자존심을 건들고 있다.  
 
10월 15일 정부가 주민투표 실시를 공고한 이후로는 주민투표 찬반을 놓고 심한 갈등이 야기되고 있다. 찬성하는 측과 반대하는 측이 팽팽히 맞서 치열하게 다투는 통에 말이 투표지 투표가 아니다. 적어도 투표는 상대를 설득하여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는 절차가 있기 마련인데 방페장을 둘러싼 투표는 전쟁과 흡사한 느낌을 받는다. 먹느냐 먹히느냐의 싸움처럼 처절하다.

하기여 지금까지 지불한 피와 땀을 생각하면 유치를 찬성하는 측도 반대하는 측도 결과에 순순히 따르기는 어려울 것 같다. 만약 자기 지역에 유치가 되지 못하는 경우 찬성했던 측은 얼마나 그 상심이 크겠는가. 목숨 걸고 싸운 투쟁인데 그것을 놓치다니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참기 어려울 것이다.

반대로 반대했던 측은 만약 지기 지역으로 유치되는 경우 얼마나 허탈하겠는가. 유치와 반대라는 목적 하나에 모든 것을 걸고 싸웠는데 그것을 얻지 못했을 때 허탈한 심정은 이루 말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성을 가지고 합리적으로 생각해보면 지금 우리들이 매달리고 있는 강박관념(?)이 온당한 것인가? 가까운 이웃들이 원수가 될 만큼 방폐장이 그렇게 소중한 것인가? 방폐장이 들어선다 해서 하루아침에 못사는 지역이 잘살게 되는 것인가? 그리고 방폐장이 들어서면 사람이 살 수없는 위험지역으로 전락하고 마는가?

방폐장이 우리의 전부를 걸만큼 대단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면 어떨까? 좀 더 여유를 가지고 보면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에 와서 지난 과거를 탓한들 무슨 소용이 되겠는가?

투표는 결코 만병통치가 될 수 없다. 그러나 찬반이 엇갈리는 경우 취할 수 있는 방법이 다수결 원칙이기 때문에 편의상 취하는 방법이다. 의사 결정 방법으로 투표를 반대하는 경우 단체조직을 이끌기는 어렵게 될 것이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투표의 방법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민주주의는 성립되지 못할 것이다.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다. 11월 2일 투표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지금까지 열심히 노력한 만큼 결과에 승복하는 것도 민주시민이 지녀야 할 덕목일 것이다. 투표가 끝나면 그동안 골이 깊게 팬 갈등과 미움 등을 시간에만 맡기지 말고 화해와 단합으로 치유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도 우리는 오랜 세월동안 미운정 고운정을 함께 나눈 이웃이 아니었던가.   
 

◆ 이 상 휘(李 相 輝) 교수 프로필 
 
 現 전북대학교 윤리교육과 교수(정치학 박사)
 現 사단법인 지역발전연구소 이사장
 現 지역발전아카데미 이사장
 現 동서교류 연합회 전북지부 회장
 전국 주간교수협의회 회장 
 미국 버클리대 객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