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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의 개헌논의 봉쇄 옳지 않다"
<칼럼>민주당 원내대표 이낙연 국회의원
이낙연국회의원

 
‘87년 체제’로 불리는 현행 헌법을 바꾸자는 논의가 제기된 지 오래입니다. 학계와 시민사회에서는 개헌을 둘러싼 논의가 꽤 진전되고 있습니다.
 
산발적이지만 정치권에서도 그런 논의가 시작됐습니다.

▲ 이낙연의원(영광 함평)
그런데 한나라당 지도부는 개헌논의를 봉쇄하고 나섰습니다. 이재오 원내대표는 6월20일 간부회의에서 “한나라당은 현 정권 하에서 어떤 개헌논의도 하지 않는다”고 못박아 말씀하셨습니다.
 
이재오 원내대표는 이어 “개헌 논의는 다음 대선 때 정당과 후보가 공약으로 내걸고 심판을 받는 형태를 취해야 한다”고 덧붙이셨습니다. 전날 선출되신 임채정 국회의장께서 취임인사를 통해 국회 안에 개헌 연구기구를 설치하자고 거론하신 데 대해 이재오 원내대표는 이를 비판하며 거부하셨습니다.

이재오 원내대표의 발언은 한나라당 지도자들의 의견과 궤를 같이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명박 서울시장께서는 이재오 원내대표와 똑같은 발언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박근혜 전 대표께서도 현행의 대통령 5년 단임제보다 4년 중임제가 맞다고 말씀하시면서도 “다음 총선 이후에 개헌논의를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5월9일 관훈클럽 초청토론)는 생각을 밝히신 바 있습니다.

한나라당 지도부는 왜 개헌논의를 봉쇄하려 드는 것일까요. “선거가 가까운 시점에 개헌논의를 시작하면 정략적으로 이용될 수 있고 모든 문제가 블랙홀처럼 거기에 빨려들어갈 우려가 있다”(5월9일 관훈클럽 초청토론)고 지적하신 박근혜 전대표의 충정을 얼마간 이해합니다.

그러나 한나라당으로서는 현상유지가 차기 집권을 위해 최상이라고 판단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한나라당은 다른 정당들을 압도하는 정당 지지도, 최근 2년 동안의 모든 선거에서 연전연승(連戰連勝)한 기록, 특히 호남을 제외한 전국을 휩쓴 5‧31 선거결과 등에서 “이대로만 가면 차기 집권은 따 놓은 당상”이라고 계산하고 있는 듯합니다.
 
혹시라도 개헌을 매개로, 또는 개헌을 명분 삼아 정계가 재편되는 것은 아닐까 하고 한나라당 지도부가 경계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런 여러가지 생각에서 한나라당 지도부는 개헌논의를 봉쇄하려 드는 것 아닐까 짐작됩니다.

한나라당 지도부의 심정은 알 만합니다. 그러나 한나라당 지도부의 그런 태도는 옳지 않다고 저는 믿습니다. 크게 보아 두 가지 이유에서 옳지 않습니다.

첫째, 학계와 시민사회와 정치권에서 이미 제기되고 있는 문제를 정치권에서 논의조차 못 하게 하는 것은 온당치 않습니다. 기왕에 제기되고 있는 문제라면 정치권에서도 논의해서 가능한 최선의 대안을 찾는 것이 당연한 책무라고 봅니다.

현행 헌법의 대통령 5년 단임제는 1인 장기집권을 막고 1노2김(노태우 김영삼 김대중씨)의 집권을 담보하는 장치로 1987년 민주화 과정에서 도입됐다는 것이 거의 정설로 자리잡혔습니다. ‘87년 체제’의 그런 역사적 사명은 이미 완수됐습니다. 이제 그것을 개선할 때가 됐습니다.

‘87년 체제’는 대통령 임기(5년)와 국회의원 임기(4년)의 괴리를 낳아 선거(지방선거 포함)를 해마다 치르도록 하는 국력낭비를 초래했습니다. 이제는 그런 국력낭비를 없앨 때도 됐습니다.

역사적 사명을 다한 ‘87년 체제’를 개선하고 해마다 선거를 치르는 국력낭비를 없애는 방안을 논의하는 것은 국회의 당연한 책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논의 자체를 봉쇄하는 것이 오히려 직무유기가 될 수 있습니다.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헌법상의 권력구조를 논의하는 것이 부담스럽거나 위험하다면, 차선의 대안도 있을 수 있습니다. 권력구조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는 대통령 선거 이후로 미루고, 이번에는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임기 만료 시기를 근접시키는 개헌만 하는 방안입니다.

좀 더 정확히 말씀드리면, 이번에는 대통령을 4년 중임제로 바꾸고 현재의 국회의원 임기를 약간 단축하는 선에서만 개헌하는 것이 어떠냐는 것입니다.
 
이번 대통령의 임기는 2008년 2월, 국회의원의 임기는 2008년 5월에 끝납니다. 임기만료에 석 달의 간격밖에 없습니다. 이번이야말로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임기만료를 근접시켜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를 같은 해의 비슷한 시기에 치르도록 바꿀 수 있는 적기(適期)인 것입니다.

한나라당 박근혜 전대표도 “대선과 총선을 매년 치르는 것도 국력낭비”(5월9일 관훈클럽 초청토론)라는 데 동의하셨습니다. 그래서 대통령 5년 단임제보다 4년 중임제가 더 맞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박근혜 전대표는 “2008년에는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임기가 맞아 들어가고 2012년에는 같은 해에 대선과 총선이 있다”며 “주기를 맞추기 위해서는 그때가 참 좋은 시기”(5월9일 관훈클럽 초청토론)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현행 헌법을 전제한다면, 차기 국회의원의 임기는 2012년 5월, 차기 대통령의 임기는 2013년 2월에 끝납니다. 임기만료에 9개월의 차이가 납니다. 차기 대통령의 임기를 꽤 많이 단축해야 하는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헌정에 미치는 영향이 이번에 개헌하는 경우보다 더 커질 것입니다. 헌정에 미치는 영향을 작게 하려면 이번에 개헌하는 것이 더 좋습니다.

둘째, “이대로만 가면 한나라당 집권은 따 놓은 당상”이라는 식의 계산법은 틀릴 수도 있습니다. 현상유지만이 한나라당의 집권을 위해 최상일 수는 없다는 얘기입니다.

차기 대통령선거까지는 1년 반이 남았습니다. 한국정치의 역동성을 감안한다면, 1년 반은 현상유지만 하기에는 긴 기간입니다. 정치학자 출신의 노재봉 전 국무총리는 “한국정치에서의 하루는 범부(凡夫)의 일생보다 길다”는 명언을 남기셨습니다. 1년 반 동안 한국정치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릅니다.

한나라당은 개헌을 매개 또는 명분으로 하는 정계 재편을 경계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부터 차기 대선까지의 기간에는 개헌의 매개나 명분이 없더라도 정계는 재편될 수밖에 없습니다.
 
개헌의 매개나 명분을 찾을 필요도 없을 만큼 절박한 상황이 한나라당 이외의 정치세력과 정치인들을 짓누르고 있습니다. 상황의 절박성은 개헌의 매개나 명분을 훨씬 능가할 정도입니다.

한나라당으로서는 1년 반 동안 현상변화를 막기만 할 것이 아니라, 제기되는 굵직한 문제들을 주도적으로 풀어가는 편이 집권에 더 유리할 수도 있다고 저는 판단합니다. 축구에 비유하자면, 전반전에 이겼다고 해서 곧바로 수비에 치중할 것이 아니라, 후반전에도 공격의 기회는 계속 살려 나가는 것이 최종 승리에 더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국회에서도 개헌을 논의할 것을 한나라당에 제안합니다. 헌법상의 권력구조에 대해서도 토론하십시다. 그러나 권력구조에 대한 본격 논의가 진정 부담스럽거나 위험하다면 그런 논의는 다음으로 미루고,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임기만료 시기를 근접시켜 대선과 총선을 같은 해에 치르도록 하는 차선의 대안이라도 논의하십시다.

 
기사입력: 2006/06/21 [17:44]  최종편집: ⓒ 브레이크뉴스 전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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