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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호메트' 창시…코란경의 '알라 신봉'
<포커스>중동 아랍국가의 '정신적 지주' '이슬람교 대해부'
소정현기자
노무현 대통령의 중동 순방을 동행 취재하고 있는 본보 브레이크뉴스 문일석 사장은 지난 9일 아랍어와 영어로 뉴스를 생산하고 있는 아랍에미리트의 국영통신사인 WAM(Emirates News Agency)과 기사제휴 협약을 체결했다.

브레이크뉴스와 기사 제휴 조인식에서 Ibrahim Al Abed 사장은 "그간 브레이크뉴스를 관심깊게 모니터 해왔는데 한국을 대표하는 중동 성향의 인터넷 브레이크뉴스가 아랍권 뉴스 취급에 있어 매우 객관적이라는데 호감을 갖게 되었다"며, "아랍권 뉴스가 굴절 없이 한국의 3천5백만 네티즌들에게 전달되기를 기대하기를 강력 희망했다."

이에 우리 한국에게 있어 현재껏 생소하게 간주되고 있는 중동 아랍국들의 정신 세계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이슬람교의 태동과 관련하여 이리저리 얽힌 역사적 비사를 마련하는 지면을 마련했다.<편집자 주> 

 
▽ 오일달러 배경삼아 막강한 영향력

▲아랍에미리트 국영통신사 WAM의 Ibrahim Al Abed 사장 
중동 지역을 포괄하는 이슬람 세계는 제1차 세계대전 즈음만 해도 가장 낮은 수준의 멸시의 대상으로 가난과 낙후된 상태로 거의 모든 영역이 서방 세력의 지배하에 있었다.

그러나 제2차 대전 이후에는  대부분의 이슬람 국가들이 외국 열강으로부터 독립하게 된다.
 
인도네시아는 네덜란드, 리비아는 이탈리아, 알제리와 모로코 및 튀니지는 프랑스, 이집트 수단은  영국으로부터 각각 독립하였다.

그리고 지난 세기 이슬람 지역에서 석유가 다량 발견되었다. 이슬람 국가들이 세계 석유 공급량의 상당분을 통제하고 가격 조정까지 함으로써 이슬람교는 새로운 자신감과 힘을 갖게 되었다. 

현재 이슬람 인구는 아시아, 유럽 및 아프리카 대륙에서 10억에 달해 인류의 다섯명중 한 명은 이슬람 교도이다. 
 
과거 이슬람교인은 거의 이슬람 국가에서 배타적으로 살아왔지만, 오늘날에는 이민을 통해 서부 유럽에만  600만명 이상의 이슬람 교인이 살고 있다.

또한 오일 달러를 무기삼아 조직적 선교 활동을 구사해온 이슬람교는 1974년 무슬림 세계연방회의에서 이슬람 세계 선교 위원회가 구성된 이래  성장 속도가 가장 빠른 종교가 되었다. 

프랑스에서 이슬람은 카톨릭 버금가는 제 2의 종교로 세력을 구축했으며, 1945년 이래 단 1개의 이슬람 사원을 소유하고 있었던 영국은 1989년 이후 1천개가 넘었으며, 1백만명 신도에 서유럽에서 가장 큰 이슬람 성전을 보유하고 있다. 더욱이 미국에서는 현재 5백만의 신도와 6백여개의 회교 사원으로 세번째로 규모가 큰 종교로서 자리잡았다.

이슬람교가 처음 한국 땅에 소개된 때는 6.25 전쟁 시기였다. 한국 전쟁에 유엔군의 일원으로 참전한 터어키군의 주베르코치와 압들라흐만 형제는 북한의 공산당과 전투를 하면서, 한편으로는 천막으로 이슬람교 성전을 세워 한국인에게 이슬람교를 전했다 한다.

터어키군의 지원으로 서울 이문동에 임시 성전이 세워졌고, 텐트 3동을 설치하여 청진학원을 개원, 정규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불우 청소년 약 120명에게 중등과정 교육과 이슬람 교육을 병행 실시하였다.

인류의 다섯명중 한 명은 이슬람 교도이다. 
드디어 1955년 10월에 이슬람교를 효과적으로 전파하기 위해 ‘한국 이슬람교 협회’가 발족된다.
 
1967년 3월에는 ‘한국 이슬람교 협회’를 재정비하여 ‘재단법인 한국 이슬람교’를 설립하여 한국 정부에 설립 인가를 받는다.
 
1976년 5월에는 현재 한남동에 중앙 사원과 이슬람교 센터가 개원하게 되었다.

이스라엘 민족이 '여호와'라는 이름으로 유일신 하나님을 믿듯이 이스마엘의 후손인 아랍 민족도 '알라'라는 이름으로 유일신 하나님을 믿는다.  
 
‘이슬람’(Islam)이라는 말은 순종이라는 뜻이며 이 종교의 창시자인 마호메트(Mohammed)의 신인 알라(Allah)에게 순종을 뜻하는 것이다. 신봉자들은 자신을 무슬림(Muslim-복종이라는 의미) 또는 모슬렘(Moslem)이라 부르며 이는 ‘복종하는 자’라는 뜻이다. 

사막의 모래, 하늘을 나는 양탄자, 호로병 등의 신비와 석유의 보고인 이슬람교의 어제와 오늘을 종합해 본다.

 
▽ '마호메트' 크랴이슈 부족에서 출생

이슬람교 태동의 배경이 되는 아라비아(현 사우디아라비아)는 지정학적으로 아시아의 서남부에 위치하는 약 300만 평방킬로미터의 거대한 직사각형 반도로서 북으로는 지중해와 시리아 사막, 동으로 페르시아만, 남으로는 인도양과 예멘,서로는 홍해와 아프리카로 가는 길목에 위치하고 있으며, 강우량은 적고 열대 사막이 많아 오아시스를 중심으로 도시가 형성 발달되었다.

6세기 후반 비잔틴 제국과 페르시아 제국간의 오랜 전쟁으로 페르시아만과 유프라테스 강을 연결하는 통상로가 단절되어 상업 활동이 마비되자, 그 대안으로 무역상들은 시리아에서 예멘에 이르는 다소 험한 서부 아라비아길을 택할  수 밖에 없었다. 이러한 국면하에서 아랍족의 번영을 이끌 기회는 메카 뿐이었다.

마호메트가 창시한 이슬람교의 최고의 성지인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사원  

사우디아라비아에 있는 메카는 이슬람의 가장 신성한 도시로 간주되고 있다.  이곳은 그들의 예언자인 마호메트가 태어난 장소이다.

이스마엘의 직계 자손으로 매우 강한 부족중 하나였던 크랴이슈 부족이 쿠자이트 부족을 이어서 메카를 다스리게 되었다. 그런데 크라이슈 부족의 하심(Hashim) 가문에서 한 인물이 출현했고, 메카 사람들은 그를 무척 신망했다.  그의 이름은 바로 예언자 마호메트의 할아바지인 압둘 무타리브였다.

압둘은 열명의 아들을 낳았는데, 그는 막내 아들을 가장 사랑하였다. 그 소년은 압둘라(Abdulla)라는 이름의 아주 영리한 아이였다. 이 아이가 예언자 마호메트의 아버지이다.

압둘라는 서기 569년에 아미나와 결혼하였다. 그는 장사를 하러 낙타상들과 함께 떠났는데, 도중에 병이 나서 죽게 된다. 이 때 아미나는 임신중이었다. 서기 670년에 유복자 모하메드를 출생하게 된다. 하지만 마호메트가 6살이 되었을 때, 그의 어머니 아미나 역시 세상을 달리 하며, 그로부터 2년 후에  그의 할아버지도 세상과 작별하게 된다.

마호메드는 8살 되었을 때, 이제는 그의 사촌 아저씨인 아부 타립(Abu Talib)과  함께  낙타 상인들과 생활하게 된다. 아부 타립은 당시 비잔틴 제국의 영토인 시리아로 가는 대상들을 이끄는 사람이었다.  마호메트가 25살 되던 해에 그는 부유한 과부인 하디자 소유의 대상을 이끌게 되었는데, 여주인의 마음을 사 마침내 40살 된 그녀와 결혼 하게 된다. 

마호메트와 하디자의 결혼 생활은 대체로 행복하였고, 6명의 자녀를 두었다. 그러나 아들은 성인이 되기 전에 모두 죽었고, 네명의 딸만 남게 되었다. 그의 딸 중에서 마호메트의 후계자이며, 그의 사촌인 알리와 결혼했던 차녀 ‘파티마’(Fatima)가 가장 잘 알려져 있다.

 
▽ '카바 신전'과  헤지라의 원년

서기 610년경, 마호메트가 포교를 시작한지 5년째 되는 해부터 박해가 시작되었다. 마호메드와 그의 추종자들이 메카에 있는 카바 신전(이스마엘의 목숨을 구해주었던 우물 곁에 세운 신전)에 있는 우상들을 숭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슬람교 이전에는 카바 신전은 다신교 중심지였다. 이 집단이 점차로 커져가자, 다신교 숭배자인 크랴이슈 부족으로부터 핍박을 받게 된다. 그래서 초기에 마호메트는 추종자들과 함께 이디오피아로 잠시 피신하기도 했다.

진정한 이슬람 교인이라면 성지 메카를 향하여 무릎끓고 매일 다섯번 기도해야 한다.   
성장은 멈출 줄 모르고 지속적으로 진행되면서, 이제는 마호메트와 그를 신봉하는 사람들을 죽이려는 음모가 싹트기 시작했다.
 
이에 마호메트와 그의 무리들은 AD 622년에 자유로이 새로운 종교를 형성시킬 수 있는 장소를 물색하게 된다.

이에 호응이라도 하듯 야드립 부족이 그와 추종자들에게 관심을 표현하며 그들의 도시를 개방하려고 하자, 이들은 서기 622년 7월 16일 비밀리에 메카에서 200마일  북방에 위치하고 있는 야스립(Yathrib)시-후에 메디나(Medina)시로 개명-에 정착하게 되었다.

그 이동은 이슬람교 발전에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이에 이슬람 교도들은 이주의 날짜를 헤지라(메디나로 이주)로 선포하여 이슬람 시대의 모태로 여기게 되었고, 그들만의 연대 표기로 AH(After Hijra)를 사용하였다.

메디나에서 그는 ‘라지아’(메카에서 오는 낙타상을 약탈하는)라는 군대를 통솔하게 된다. 그는 계속해서 소규모 전쟁에서 승리한다.
 
마호메트가 유대 정착촌을 기습함으로써 그들에 대한 적대감을 나타내기 시작한 것도 바로 메디나에 정착할 때부터이다.

이에 메카에서는 마호메트와 그 일행을 섬멸하려 만명의 군대를 메디나로 보냈으나, 그들은 마호메트의 방어망을 뚫지 못했다. 결국, 세차례의 대접전 끝에 메카의 부대는 패배하게 된다.

그러나 마호메트는 정치가적 기질을 발휘하여 메카를 멸망시키지 않고, 그들을 이슬람교도로 개종시키기로 작정하였다. 그리고 감격적으로 서기 630년에 마호메트는 메카로 무혈 입성하게 된다.

메카의 지도자들이 그를 환영했고, 그에게 순종했다. 마호메트는 카바(Kabaa)성전에 있는  모든 우상을 파괴했고, 이 카바 사원을 이슬람에서 가장 성스러운 사원으로 선언했다. 
 
또한 절대자인 신의 뜻에 순종한다는 의미에서 단체의 이름을 ‘이슬람’ 이라 지칭하였다. 그래서 지금도 전 세계의 이슬람 교인이 이 건축물를 향해 기도를 드리는 것이다.

메카를 완전히 장악한 마호메트는 점점 강해졌고, 많은 부족들은 자신들의 안전을 위해 회교도가 되었다.
 
마호메드 역시 다른 부족과의 관계를 긴밀하게 하고, 자신의 위치를 확고하게 만들기 위해  많은 여인들과 결혼했다. 마호메트에게는 아홉명의 아내와  한명의 카톨릭 신자인 첩이 있었다.

이제 마호메드는 알라를 위해 세계를 정복하기 위해 여러 민족들을 통합시켜 군을 조직했다.  그러나 그도 632년에 죽었다. 예언자 마호메트의 시체는 오늘날 순례자들이 매년 기도드리러 가는 메디나 사원에 안치되어 있다.

AD 632년 마호메트의 갑작스런 죽음은 이슬람 공동체에 커다란 위기를 가져다 주었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마침내 아랍 지도자들은 그들 중에 가장 존경받고 연로한 지도자를 선출하는 전통적인 아랍 방식을 채택하게 되었다.

그들은 마호메트의 사촌 아부 바크를 선출했다. 즉, 아부 바크는 제1대 칼리프 (Caliph, 계승자라는 의미) 가 된 것이다. 마호메트 사후 칼리프가 회교 통치권의 주축이 되어 이들은 아시아와 아프리카, 유럽까지 그들의 신앙을 집요하게 전파하게 되었으며, 이슬람교의 활발한 포교는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다.

 
▽ 기독교와 이슬람의 접촉점

이슬람과 기독교는 같은 뿌리를 갖고 있으며, 이 둘은 모두 아브라함을 신앙의 아버지로 모시고 있다. 그럼에도 시간이 흐를수록 이 둘의 간격은 극단과 반목의 관계로 변화하였다. 그 역사적 배경을 파악해 보기로 한다.

▲ 기독교로부터 지대한 영향을 받은 코란경 
비아랍적인 신앙 즉, 유대교는 마하메트가 출생하기 100년전부터 아라비아 반도의 주민 사이에 어느 정도 보급되어 있었다.
 
팔레스타인 땅에 재앙이 떨어질 때마다 유대인들은 피난처를 찾아 아라비아 반도로 들어갔으며, 심지어 멀리 예멘까지 이동한데서 기인한다.

그리고 예언자의 생존 시기에는 메디나 주위에는 규모가 큰 세 유대 부족이 거주했고, 모하메드가 이들과 동맹을 맺은 것으로 보아 그들의 세력도 상당했던 것 같다. 그들은 비록 아랍화는 되었지만 종교만은 유대교를 신봉하고 있어서 아랍인의 유일신화에 큰 영향을 미친 것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기독교가 언제 반도에 보급되었는지 확실치 않으나, 예언자의 생존 시에 이미 남부 아라비아에 널리 퍼져 있었다. 이처럼 마호메트의 출생 시대인 AD 6세기경에는 기독교와 유대교는 아라비아반도 도처에 상당한 세력을 구축하여 그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이는 후에 이슬람의 급속한 성장에 밑거름이 되었다.

원래 사역 초기에 마호메트는 아라비아에 거주하고 있었던 그리스도인들과 토론하고 그들로부터 배웠다는 몇개의 증거가 있다. 또한 그의 부인 카디자와 사촌인 바라카는 아랍 출신 카톨릭이었는데, 마호메트는 부인과 사촌으로부터도 많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622년 메카의 박해를 피해 메디나로 온 마호메트는 기독교인을  포함한 다른 종교인들이 이슬람교를 포용해줄 것을 기대했다. 그러나 그곳에 먼저 살고 있던 유대인들이 알라의 예언자로 자처하는 마호메트를 사기꾼으로 보고 조롱하기까지 했다.

이에 그런 소망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입증되고, 동시에 그의 가르침이 확장되어감에 따라 그의 우호적이었던 태도는 변해서 비난과 노골적인 적개심을 표명하였다. 그러한 이유로 이슬람교는 유대교와 기독교를 적대시 한다.

그후 십자군 운동과 유럽의 식민지 통치같은 역사적 사건으로 말미암아 이들 종교 사이의 간격은 더욱 벌어졌다. 그래서 아랍인들은 특히 유대 국가 이스라엘을 반드시 제거해야 할 원수로 보고 있는 것이다.

선교사들에게 던지는 공통적 질문, 복음으로 접근할 때 가장 어려운 부류는 어떤 사람이었냐고 묻는다면, 서슴없이 다음과 같이 말한다고 한다. ‘모슬렘 교도들’ 이라고. 이처럼 이슬람교에서 개종는 무척 어려운 일로 보인다.

기독교로의 혹은 타종교로의 개종이 보편적으로 자신의 가정과 사회를 허무는 배교로 강하게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독교 신앙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는 이슬람 교인은 강한 압박감을 자주 느끼고 있다.
 
세례를 받는 단계까지 택한 이들은 가정과 직장과 사회에서 적개심과 핍박을 받고 있다. 많은 이슬람교 개종자들이 안전을 위해 집을 떠나 있다. 일부는 목숨을 잃기도 한다.

창세기를 보면, 하나님께서는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시려고 아브라함을 부르셨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으나, 그의 아내인 사라는 아기를 낳을 수 없는 몸이었다. 

사라는 자신의 몸종인 하갈을 아브라함에게 주어 아기를 낳도록 하였고, 아기의 이름을 이스마엘(아랍 민족의 선조)이라 불렸다. 아들이 생기자, 하갈은 그의 여주인을 멸시하기 시작했다.(창 16장)

그러나 사라가 90세에  하나님의 약속대로 이삭이라는 아들을 낳게 되었고, 사라의 간청을 이기지 못해 아브라함은 하갈과 그녀의 아들 이스마엘을 내쫓는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이스마엘도 그의 아들이기 때문에 큰 민족을 이루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하갈과 이스마엘이 물도 없이 사막을 헤매일 때, 하나님께서 여종의 간구를 들으시고 천사를 보내시었다. 천사는 하갈에게 이스마엘로 인하여 큰 민족을 이루게 되리라고 말하였다.
 
또한 하나님이 하갈의 눈을 밝히셔서 샘물을 찾게 하셨고, 그들의 목숨을 구해주셨다.(창 21장) 이슬람 교인이 자신들을 ‘사라센’(Saracens)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데, 이는 ‘사라로부터 빈손으로 버림받았다’는 의미의 그리이스 단어에서 유래된 것이라 한다.

 
▽ 코란과 이슬람교 핵심 교리

마호메트는 생애의 대부분을 묵상하는 가운데 여러 가지 환상과 계시을 보게 되었고, 이를 기록한 것이 바로 아라비아어로 ‘암송하다’라는 뜻을 지닌 꾸란(Qur'an), 영어로는 코란(Koran)이다.

따라서 이슬람교도의 경전인 코란은 마호멧에게 주어진 계시의 ‘암송’인 것이다. AD 611년 첫 계시후 AD 632년 그가 죽기까지  전 생애에 걸쳐 계시를 간헐적으로 받았다고 한다. 코란 전체를 계시하는데 22년이 걸렸다.

▲ 아랍인들의 정신적 구심점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이슬람의 사원들  

신약 분량의 약 5분의 4가 되는 이슬람교의 경전인 코란은 전체 6,219절로 구성되고, 이것은 114 수라(Surah) '성경의 장(章)에 해당' 로 편집되어 있는데, 짧은 장은 뒷부분에, 긴 장은 앞부분에 놓여져 있다. 내용을 보면 모두가 마호메드에게서 나온 말이다.

고증된 바에 의하면 ‘수라’라는 단어는 벽돌 혹은 포도밭의 구획을 의미하는 히브리 단어에서 유래된 것이다.

이슬람교의 전통에 의하면, 코란의 첫 수집본은 마호메트의 후계자인  초대 칼리프 아부 바크(Abu Bakr)의 주도하에 이루어졌다고 한다. 마호메드의 숙부이기도 했던 아부 바크는 신탁을 책임진 ‘암송자’ 들이 많이 죽어서 코란이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손상되지 않을까 두려워했다. 

아부 바크는  마호메트의 서기였던 자이드 이븐 타비트에게 코란을 수집하라고 명령했다. 한 전통서에 의하면, 그는 인간의 기억에서는 물론  양피지, 파피루스, 평석, 야자잎, 동물의 갈비뼈, 가죽 조각, 나무판에서도 코란을 수집했다고 한다.

마호메트가 받았던 계시는 서기 650년경에 씌여진 코란경에 기록되었다. 그런데 코란이 다른 언어로 번역되지 않는 이유는 이슬람 율법사에 의하면,하나님의 사자가 선지자 모하메드에게 내려준 말씀이 다른 언어로 번역되는 것은 불경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참조하면 4년 4개월 4일,이날부터 모든 모슬렘 어린이들은 코란에 입문하기 위해 그 어려운 아랍어를 실타래를 풀어가듯 조금씩 익히기 시작한다. 그날은 어린이를 위하여 모든 일가 친척들이 몰려와 큰 가족 잔치를 열어준다.

먼저, 이슬람교인이면 누구나 신봉해야 될  근본적 교리, 이른바 5개의 기둥들은 아래와 같다.
                                      
▽ 하나님. 참된 하나님은 하나 뿐인데, 그 이름은 알라이다. 

▽ 천사들. 천사장은 마호메트 앞에 나타났다고 하는 가브리엘 천사이다.

▽ 경  전. 즉, 아브라함 문서(현재 소실됨) 타라트(성경의 모세 5경), 자브르(다윗의 시편),예수의 인질(Injil, 신약의 4 복음서), 그리고 코란(선지자 마호메트에게 계시된 책)이다. 그러나 이 코란은 알라신이 인간에게 한 마지막 말이므로, 이전에 쓴 위의 책들보다 월등하다.  

▽ 마호멧.  코란에는 알라의 예언자 28명이 기록되어 있다. 아담, 노아, 모세, 다윗, 요나 및 예수가 그 28명에 포함된다. 이중 21명이 성경에 나타나는 인물이다. 이중에서 마호메드가 가장 위대한  예언자임은 말할 것도 없다.

그리고  “예수는 마리아의 아들로서 선지자일 뿐 이는 이전에 지나간 선지자들과 같음이니라”(수라 5:78) 라고 예수님의 신성을 전면으로 부인하고 있다.

▽ 마지막 날. 죽은 사람들은 ‘마지막 날’에 부활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알라가 심판자가 되어 사람들을 지옥 혹은 천국으로 가도록 한다. 천국이란 관능적 쾌락의 장소이며, 지옥은 알라신과 그 예언자 마호메트를 거역한 사람들을 위한 장소이다.

위 교리 외에 실행되어야 할 다섯가지 의무가 또 있다.

△ 신앙 진술. 이슬람 교인이 되기 위해서는 ‘샤하다’(Shahadah) 즉, “알라 외엔 다른 신이 없으며 알라신의 예언자는 마호메트이다”라고 하는 신앙 진술을 두명의 증인 앞에서 시행한다.

△ 기 도.  매일 다섯번 이 의식을 지켜야 한다. 성지 메카를 향하여 무릎끓고 기도해야 한다.<사라트>(수라 17:80)

△ 자선 행위. 신자의 총 수입 중 40분의 1을 자선에 바치도록 되어 있다. 이는 과부, 고아, 환자 및 불행한 사람들에게 주어진다.<자카트>

△ 라마단(Ramadan). 모하메트가 그의 첫번째 계시받은 날을 기념하는 모슬렘의 절기이다. 이 기간동안에는 해뜨기 시작하는 시간으로부터 해지는 시간까지 금식한다. 음식, 음료, 부부 관계를 금해야 한다. 그러나 어린 자녀들과 노인,정신 병자, 임신한 여인, 간호하는 여인 등은  면제받게 된다.

라마단월(月)은 이슬람 달력에서 9번째 달이며, 가장 성스러운 절기가 바로 이 때이다. 라마단은 매년 11일 빠르게 돌아오기 때문에 33년후에는 원래의 시일로 돌아오게 된다. 
 
또한  라마단 기간에 잘못을 저지르게 되면, 그의 금식은 무의미한 것이 된다고 믿고 있다. 그리고 이 금식의 달을 '사움'이라고 한다.

△ 메카 순례. 신자의 생애에 최소한 한 번은 메카를 순례해야 되며, 이것을 하지(Hajj- 성지 순례)라고 한다. 만일 순례하기 곤란하거나 위험한 경우에는 대신 다른 사람을 보낼 수 있다.

또한 비공식적인 여섯번째의 지주로서 지하드(Jihad) 일명 성전(聖戰)이라는 것이 있다. 이는 이슬람교를 지키기 위한 전쟁을 의미하며, 알라 신을 위해 다른 지역을 점령하는 데에 이용되고 있다. 근래에 와서는 이스라엘에 대항하여 무력을 동원하는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 

앞서 서술되었듯이 성경이 이슬람 교리에 끼친 영향은 지대하다. 그 단적인 예로서 아랍 사람들은 그들의 조상이 아브라함의 아들 이스마엘인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다. 또한 그들이 믿고 있는 하나님의 속성, 육체의 부활, 천국과 지옥 등이 모두 성경의 교리와 유사하다.


▽ 구소련 회교권과 아랍권의 연합전선

사실, 구소련 제국 붕괴 이후 탄생한  12개의 신생 독립국가연합(CIS)중에서 5개의 중앙 아시아 공화국인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키르키즈, 투르크메니스탄, 타지키스탄에 사는 5천만의 인구중 4천만이 무슬림이다.

▲ 중동 이슬람 국가들과 구소련 이슬람 공화국들간 유대감이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코카서스 지방에 거주하는 무슬림까지 합하면 6천-7천만명의 회교도들이 이 지역에 살고 있다. 그리고 이들 중 점점 많은 숫자가 중동 아랍권의 후원과 연대하에 아라비아어를 배우고, 코란을 연구하며 모스크(회교사원)에서 기도하고 있다.

이슬람 공화국의 향방은 중동 무슬림들의 움직임에 큰 변수가 되고 있다. 소련과 동구권의 변혁이 동, 서 유럽의 동질성 회복의 기회가 되었다면, 중앙 아시아 지역의 무슬림들 역시 소련의 개방화로 러시아 혁명 이후 탈취당했던 중동 이슬람 세계와의 동질성 회복의 계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예컨데 이란은 전통적으로 중앙 아시아의 소련내에 있는 이슬람 공화국들에 대해 정치, 문화적 영향력을 지녀왔다. 이 지역은 원래 페르시아 제국의 영토였으나 18, 19세기에 러시아 제국에게 강탈당해, 현재에도 이란의 동족들이 구소련 제국에 많이 살고 있다.

900만의 이란 아제르족은 600만의 동족을 아제르바이젠 공화국에 두고 있으며, 50만의 투르크족은 250만의 동족을 투르크 공화국에 두고 있다. 이란은 이미 호메이니 사후 고르바초프 전 소련 지도자에게 중앙 아시아 지역의 종교 자유를 허용해 달라고 여러번 요청하였으며, 전 소련 지도부도 이에 긍적적인 반응을 보인 바 있다.

거기에다 이란은 철로를 통해 중앙 아시아 지역을 아라비아해와 페르시아만으로 연결시킬 수 있는 지정학적 이점까지 갖추고 있다.


 
기사입력: 2006/05/15 [00:34]  최종편집: ⓒ 브레이크뉴스 전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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