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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29일은 안중근과 순국열사만을 생각하자.
이용섭 전 행자부장관, 전 국회의원, 경술국치일, 국가 기념일로 지정해야
이학수기자

 

▲ 이용섭 전 행자부장관     

 

 

8월 29일 오늘은 일제에 나라를 빼앗긴지 106년이 되는 날이다. 우리 역사상 처음으로 나라를 통째로 빼앗긴 국치일이다. 518년이나 지속되어온 조선이 왜 그렇게 힘없이 무너졌을까? 직접적인 원인은 일제의 침략이지만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조선 내부에 있었다. 군주와 대신 등 국가 지도자들이 무능하여 나라가 위기에 처했지만 그들은 분열하고 본인들의 안위와 이익 챙기기에만 급급했기 때문이다. 국력이 좀 약하더라도 지도자들과 백성들이 똘똘 뭉쳐 외침에 대항하면 쉽게 망하지 않는 것이 역사적 교훈이다.

 

일제는 강제병합의 전단계로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기 위해 1905년 11월 9일 이토 히로부미를 특파대사자격으로 서울에 파견했다. 이토는 고종을 알현하고 ‘짐이 동양평화를 유지하기 위하여 대사를 특파하니 대사의 지휘에 따라 조처하라’는 오만불손한 내용의 천황 친서를 올리고 우리 외교권을 일제에 넘기는 소위 ‘을사늑약’을 강압했다.

 

아울러 이토는 대신들을 개별적으로 불러 회유와 협박을 계속했다. 조약체결 당일인 11월 17일 오후 3시에 고종황제와 8명의 대신들은 어전회의를 열었다. 고종은 “대신들이 협의해 잘 처리하라”는 무기력한 한마디를 남기고 자리를 떴다. 대신들이 어전회의에서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하자 이토는 주한일군사령관 하세가와를 대동하고 헌병의 호위를 받으며 회의장에 들어와 대신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조약체결의 동의를 강요했다.

 

이 날 회의에 참석한 8명의 대신 중 참정대신 한규설을 비롯한 민영기, 이하영 3인은 반대의사를 표명했다. 그러나 학부대신 이완용을 비롯한 이근택, 이지용, 박제순, 권중현 등 소위 을사오적은 조약내용에 황실의 안녕을 추가해달라는 요구를 하고 찬성했다. 당초 일본은 4개 조문을 생각했으나 이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일본국정부는 한국 황실의 안녕과 존엄의 유지를 보증한다’는 5조를 추가하였다. 대신들의 머리에는 백성은 없었고 황실만 있었던 것이다. 이 조약에 따라 한국은 외교권을 일본에 박탈당하였고 이듬해인 1906년 2월에는 서울에 통감부가 설치되고 조약 체결의 원흉인 이토가 초대통감으로 취임하였다.

 

황제와 대신들은 이렇게 무능하고 비겁했지만 백성들은 위대했다. 장지연이 11월 20일자 ‘황성신문’에 논설 ‘시일야방성대곡’을 발표하여 일본의 침략성을 규탄하면서 많은 백성들이 조약의 무효화를 주장하고 나섰다. 전국 방방곡곡에서는 의병이 궐기하여 반대투쟁에 나섰다. 1907년 이후에는 전국의 유생과 농민들이 봉기하면서 대규모 저항 운동으로 발전하였다. 특히 1907년 8월 1일 일제가 한국군을 강제 해산하자 이에 항거한 군인들과 의병이 서로 연합하여 대대적인 무장 항일전을 벌였다. 서울 공격을 개시하기 위해 1908년 음력 정월 양주에 집결한 의병군은 모두 1만 명에 달하였다. 병합정책이 타격을 받을 정도로 의병운동이 빠르게 확산되자 일제는 본국의 일본군까지 끌어들여 1909년 9월부터 2개월간 의병 대토벌작전을 펼쳤다. 이로 인해 수많은 의병들이 목숨을 잃었고 살아남은 의병들은 압록강 두만강을 건너서 만주로 떠나 독립운동을 펼쳤다.

 

일제는 의병들을 토벌하여 국내 저항세력을 잠재웠지만 뜻하지 않은 양대 사건을 만나게 된다. 1909년 10월 26일 만주 하얼빈에 갔던 이토가 의병장 안중근에 의해 저격을 당해 죽는 사건이 발생하였고, 뒤이어 그 해 12월 2일 친일파 내각총리대신 이완용이 애국청년 이재명의 습격으로 중상을 당해 집무불능 상태에 빠지자 일제의 한국병합은 다음해로 넘어가게 되었다.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중근은 도망치지 않고 당당하게 체포되면서 러시아어로 ‘꼬레아 우라’(대한민국 만세)를 외쳤다. 당시 하얼빈은 러시아 조차지여서 거사의 정당성을 알리기 위해 러시아어로 외친 것이다. 안중근은 러시아 경찰에 의해 체포되어 하얼빈 역에서 취조를 받는 과정에서 이토가 숨졌다는 얘기를 듣고 바로 무릎을 꿇고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게 해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라고 기도를 드렸다. 러시아는 일본정부의 요구에 따라 안중근을 일본 영사관에 인도하게 되고 일제는 뤼순감옥에 수감하였다. 안중근은 심문과정에서 이토를 처단한 이유로 ‘명성황후를 시해한 죄, 한국을 일본의 보호국으로 만든 죄, 고종황제를 폐위시킨 죄, 군대를 해산 시킨 죄, 동양의 평화를 깨트린 죄’ 등 15가지를 당당하게 밝혔다. 안중근은 항소도 하지 않고 영웅의 모습으로 1910년 3월 26일 어머니가 보내 준 흰색 명주한복을 입고 뤼순감옥에서 사형 집행되어 순국하였다. 그의 나이 32세였다.

 

일제는 의병을 토벌하고 안중근을 처형한데 이어 7월 29일 부상에서 회복된 이완용을 다시 총리대신으로 임명하고 한국병합을 서둘렀다. 결국 1910년 8월 22일 내각총리대신 이완용과 일본 통감 데라우치의 이름으로 이른바 한일병합조약이 서명되었다. 그러나 일제는 백성들의 저항을 두려워하여 조약체결을 숨긴 채 집회금지와 원로대신들의 연금 등의 조치를 취하고 8월 29일 이를 반포하였다.

 

병합조약을 보면 8개 조항 중 1조와 2조에서 '우리의 모든 통치권과 주권을 일본 황제에게 영구히 양여한다'는 내용을 규정하고 나머지 조문에서는 황실과 대신들의 신분보장 내용을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일제는 황제와 대신들에게 일본 귀족으로 인정하는 작위와 많은 은사금을 주었다. 나라는 망했지만 이들의 부귀는 바뀐 것이 없었다. 나라가 망하는데 황실과 대신들은 자신들의 안위와 신분을 유지하기에 급급했던 것이다. 더욱 한심한 것은 조약을 8월 22일 서명하고 8월 29일 발표하기까지 일주일 사이에 순종은 이완용 민병서 등 나라를 팔아먹은 황실과 대신 40여명에게 훈장을 수여하기에 이른다. 국가안위와 역사의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이런 지도자들이 버티고 있는 나라가 어떻게 망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뿐만 아니라 대한제국 정부는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안중근 등 순국열사들을 죄인으로 만드는 행위를 서슴없이 감행했다. 안중근의사의 저격으로 조선침략의 원흉인 이토가 죽자 순종은 조선통감부에 설치된 빈소에 조문하고, 이토 히로부미에게 ‘文忠公’(문충공)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시호는 나라에 큰 공을 세운 사람에게 내려주는 것인데 안중근은 공신을 죽인 사람이 돼 버린 것이다. 또한 총리대신 이완용을 정부대표로 하여 이토 조문사절단을 중국 대련에 파견까지 한다. 이완용은 돌아오자마자 내각명령을 내려 3일 동안 가무음곡을 금지시키고 일본에서 개최된 이토 장례식에 조문사절단을 파견하였다. 같은 시간에 장충단공원에서 이토 추모식을 거행하기에 이른다. 고종은 이토 유가족에게 10만원의 조의금까지 보낸다. 참으로 수치스러운 일들이 일반 백성도 아니고 대한제국의 황실과 대신들에 의해 이루어 진 것이다.

 

어떻게 해야 다시는 경술국치와 같은 아프고 부끄러운 역사가 반복되지 않을까? 경술국치일을 국가 기념일로 지정해 역사적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경술국치일은 광복이후 정부가 국가기념일로 지정하였으나, 한일협정을 추진하면서 1960년대에 특별한 이유 없이 폐지됐다. 일반인들에게 8월 29일이 무슨 날이냐고 물으면 경술국치일이라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경술국치일은 국민들로부터 점점 잊혀져 가고 있어 참으로 안타깝다. 따라서 다시 국가 기념일로 지정해 국민 모두가 이 날을 기해 일제의 만행을 상기하고 와신상담의 각오를 하자는 것이다. 잘못된 역사를 반성하고 다시는 되풀이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자는 것이다. 국가를 위해 자기를 초개처럼 버린 안중근의사와 순국열사들을 민족의 영웅으로 기리자는 것이다.

 

최근 들어 부쩍 일제강점기와 친일행위를 미화하고 역사를 왜곡하려는 세력이 준동하고 있어 참으로 통탄할 일이다. 더욱이 우리사회는 지금 모든 것을 돈과 물질로만 평가하는 물신주의로 인해 역사의식과 민족정신은 온데간데없고 사회는 천박해졌다. 역사교육을 바로 세워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이어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106번째 경술국치일, 오늘 하루만이라도 순국선열들을 기리면서 민족정신과 우리의 얼을 생각했으면 한다.


 
기사입력: 2016/08/28 [21:40]  최종편집: ⓒ 브레이크뉴스 전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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